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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약리학 수업을 들을 때의 일이다. 교수님은 신약 개발 과정을 설명하면서, 임상실험에서 후보 약물의 효과가 플라시보 효과보다 더 좋아야 한다고 하셨다. 플라시보 효과란, 의학적 처치 자체가 아닌, 의학적 처치에 대한 환자의 믿음이 환자의 몸에 치료 효과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임상실험을 할 때는 실험 참여자를 임의로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쪽 집단에는 후보 약물을 주고, 다른 한쪽에는 효과가 없는 가짜 약물을 준다. 이외에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했는데도 두 집단에서 병의 경과가 다르면, 이 차이는 후보 약물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짜 약물을 처방한 집단에서도 증상이 일부 개선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약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플라시보 효과를 줄이는 실험을 고안하고, 플라시보 효과보다 월등한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서 수업을 듣던 내게는 이상하게 들렸다. 환자 입장에서야 약물로든, 플라시보 효과로든 낫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플라시보 효과는 공짜가 아닌가! 그래서 교수님께 플라시보 효과를 왜 치료에 이용하지 않느냐고 질문드렸다. 교수님은 너무나 당연한 것을 태연하게 묻는 동양인 학생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셨다. 환자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 뇌: 몸과 마음의 중간지점

서양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철학자인 플라톤과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이 완전히 다른 범주에 속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시각에서 보면 플라시보 효과는 성가신 존재였다. 그래서 19세기에는 환자의 거짓말이라고 여겼고, 20세기에는 일시적인 심리 효과라고 보았다. 플라시보 효과가 인정되어 원리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부터라고 한다.

뇌는 몸의 일부이면서 마음과 긴밀하게 관련된 기관이다. 그래서인지 만성 통증, 우울증, 불안처럼 뇌의 상태와 마음 둘 다에 영향을 받는 질병에는 플라시보 효과가 유난히 강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플라시보 효과보다 나은 약을 개발하기가 더 어렵다. 오죽했으면 거대 제약회사들이 신경정신질환 치료제의 개발 비중을 줄이는 대신, 유전적 치료 등 다른 방법을 모색할 정도이다. 프로작과 같은 신경정신질환 치료제의 매출과 수익률이 대단히 높다는 점을 생각할 때, 제약회사들의 이 같은 결정은 매우 놀랍다.

플라시보 효과는 신약 개발의 측면에서는 난관이지만 뇌과학적으로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생각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수 있고, 새로운 치료법의 개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신경계통의 질환에서는 플라시보 효과가 작용하는 부분과 의학적 처치가 작용하는 부분이 겹치거나 상호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플라시보 효과의 원리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 플라시보 효과

플라시보 효과는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환자가 병원처럼 치료를 암시하는 환경에서 의료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맥락에 있으면 질환이 호전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고, 이런 예상이 증상의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맥락과 진통 효과를 연관짓는 학습을 통해서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서도 플라시보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연구에서는 생쥐가 특정한 상자에 있을 때만 진통제를 투여했다. 그 뒤 쥐의 꼬리에 통증을 가하면 쥐는 진통제를 투여받지 않았을 때보다 투여받았을 때 통증에 대한 반응이 약하고, 통증에 관련된 호르몬 분비도 낮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한 뒤, 연구진은 쥐가 진통제를 투여받았던 상자에서 진통제 대신 생리 식염수를 투여했다. 생리 식염수가 가짜 약물로 작용한 셈이다. 그 뒤 쥐의 꼬리에 통증을 가했더니, 마치 진통제를 투여했을 때처럼 통증 반응도 약하고 통증에 관련된 호르몬의 분비도 적었다. 쥐에서도 플라시보 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또 플라시보 효과는 약물에 대한 정보의 영향을 받는다. 약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때보다는, 약물의 전달 과정과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을 때 플라시보 효과가 더 잘 일어난다고 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약한 진통제라고 알려진 가짜 약물에 대해서는 약한 플라시보 효과를, 강한 진통제라고 알려진 가짜 약물에 대해서는 강한 플라시보 효과를 보였다. 플라시보 효과의 크기까지 사전 정보에 따라 조절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사회적인 맥락과 정보를 해석하고 사건의 결과를 예상하는 전전두엽이 플라시보 효과에 관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 보상에 대한 예측과 학습에서 중요한 부위인 줄무늬체가 치료 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학습에 기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줄무늬체의 크기나 활동 정도의 개인차는 사람마다 플라시보 효과가 얼마나 강하게 나타나는지와도 관련된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의 플라시보는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플라시보 효과가 존재하며, 플라시보 효과의 신경 메커니즘은 이제서야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 몸과 마음: 하나의 불꽃의 두 그림자

많은 사람이 몸과 마음이 분리된다는 생각에 익숙하지만, 모든 문화의 모든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몸이 마음의 근간이라고 보고, 몸을 통해 마음을 수양하려고 한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마음과 긴밀하게 연관된 뇌는 온몸에 퍼진 신경계를 통해 몸과 상호작용하며, 몸이 주는 에너지와 물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복잡한 것을 작게 나누어서 살피는 것은 복잡한 대상을 이해하는 합리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면 오히려 혼란을 빚을 수도 있다. 어쩌면 몸과 마음은, 생명이라는 하나의 불꽃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벽에 비춘 그림자일지도 모르겠다.

 

<송민령 |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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