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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하고 수많은 종류의 세포로 끝난다. 하지만 세포 안에 들어있는 유전자의 종류는 언제나 처음과 같다. 어떤 의미에서 세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극히 일부분만을 표현한다.
– 조너던 와이너, ‘초파리의 기억’에서

 

 

GIB 제공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4년 전 펴낸 ‘김대식의 빅퀘스천’이라는 책에서 ‘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을 제시했다. 책의 목차를 보면 빅퀘스천이란 ‘답을 안다면 심오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답을 알 수 없는 물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에도 시간과 공간의 본질에서부터 인간의 의식에 이르기까지 많은 빅퀘스천이 있다. 이 가운데 다수는 관련 지식이 없을 경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또는 그런 질문이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전문적이라는 게 김 교수가 선정한 ‘인문학적 빅퀘스천’과 다른 점 아닐까.

학부에서 화학을, 대학원에서 분자생물학을 공부한 필자는 세 가지 빅퀘스천에 늘 관심을 두고 있다. ‘무생물에서 어떻게 생물이 나왔나’, ‘원핵생물에서 어떻게 진핵생물이 나왔나’, ‘단세포생물에서 어떻게 다세포생물이 나왔나’이다.

물론 이 질문들이 나온 지는 100년도 넘었고(첫 번째 질문은 인류 문명의 역사와 함께 했다) 이에 대한 대답도 무수히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궁금한 질문들이다.

빅퀘스천에 대해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내놓은 대답이 궁극적인 게 아니라고 해서(여전히 궁금하므로)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이들의 답을 통해 ‘우리는 현재 무엇을 모르고 있고 그걸 알려면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 측면을 알면 두세 가지 새로운 궁금증이 생기게 만드는 게 위대한 질문 아닐까.

학술지 ‘사이언스’ 6월 29일자에는 다세포생물의 기원에 대한 최근 수년 사이의 연구결과를 소개한 심층기사가 실렸다. 다들 흥미로운 내용이었는데 특히 두 가지는 필자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라 기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인용한 논문을 찾아 읽어봤다. 둘 다 동물 다세포성에 대한 내용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독자들도 공감할지 확신은 안 서지만 이 자리에서 소개한다.

 

 

동물과 가장 가까운 친척은 깃편모충류

먼저 동물 다세포성의 기원을 유전자 차원에서 규명한 연구로,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까지 동물 고유의 유전자라고 생각했던 것 가운데 다수가 동물과 가장 가까운 단세포생물과의 공동조상이 이미 지니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본론에 들어가지 전에 분류학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자.

1969년 미국 코넬대의 생태학자 로버트 휘태커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5계 분류 체계’를 발표했다. 즉 세포로 이루어진 생물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는데, 모네라계(Monera. 원핵생물)와 식물계, 동물계, 균계, 원생생물계다. 필자를 포함해 20세기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중고교 생물 시간에 배운 분류체계다.

그런데 DNA 염기를 해독할 수 있게 되면서 5계 분류가 치명상을 입었다. 모든 세포 생물이 공유한 리보솜RNA의 유전자를 해독해 염기서열을 비교한 결과 모네라계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생물, 즉 세균(bacteria)와 고세균(archea)로 나뉘어야 하고 나머지 네 계는 진핵생물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오늘날 교과서에서 배우는 ‘3영역 분류 체계’는 이렇게 나왔다.

휘태커는 균류로 볼 수 없는 단세포 진핵생물을 하나로 묶어 ‘원생생물계’를 만들었지만, 유전자 서열 분석을 통해 드러난 사실에 생물학자들은 아연실색했다. 원생생물의 다양성이 너 무 컸기 때문이다. 식물과 동물, 균류는 원생생물의 잔가지에 불과했다. 즉 원생생물이라는 용어는 단세포 진핵생물을 의미할 뿐 분류학적으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 결과 다세포생물의 기원도 새로운 시나리오가 필요해졌다. 단세포생물에서 원시다세포생물이 나오고 여기서 식물, 동물, 균류가 진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식물과 동물은 각각 한 차례 다세포성이 진화한 결과이고 균류는 십여 차례 독립적으로 다세포성이 진화했다. 따라서 동물 다세포성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으면 식물이나 균류를 연구하는 것보다 진화적으로 동물과 가장 가까운 생명체를 들여다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니콜 킹 교수팀이 지난 10여 년 동안 이 일을 했다. 바로 깃편모충류(Choanoflagellate)라는 바다에 사는 원생생물(단세포 진핵생물)로, 긴 편모가 하나 있고 그 주변에 깃이 펄럭이는 형태다. 동물이 식물이나 균류(버섯(자실체)처럼 그럴듯한 구조를 만드는 종류가 있다)보다 단세포생물과 더 가깝다는 게 수긍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유전자 서열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진핵생물에서 유전자 진화를 보여주는 데이터로 동물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 깃편모충류(Choanoflagellate)임을 알 수 있다. 최근 동물 고유의 유전자로 알고 있던 370여 가지를 동물과 깃편모충류의 공동조상(Choanozoan. 파란색)이 이미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동물 다세포성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 ‘eLife’ 제공

 

 

공동조상은 단순한 다세포성 생물일지도

킹 교수팀은 2008년 학술지 ‘네이처’에 깃편모충류의 한 종인 모노시가(Monosiga brevicollis)의 게놈을 해독한 결과를 발표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때까지 동물에만 있다고 알고 있었던 유전자 가운데 78개를 모노시가에서 찾아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는 동물 세포가 서로 부착하는데, 즉 다세포성을 띠게 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카데린 단백질의 유전자도 있었다.

10년이 흐른 뒤 킹 교수팀은 지난 5월 31일 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깃편모충류 21종의 유전자를 동물의 유전자와 비교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동물에만 있다고 알려진 유전자 가운데 무려 370여 가지가 깃편모충류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동물과 깃편모충류의 공동조상(적어도 6억 년 전 살았던)이 이 유전자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런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건 지금까지 동물 1000여 종의 게놈이 밝혀지는 동안 깃편모충류는 2종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19종의 게놈을 추가로 해독하면서 깃편모충류 역시 동물 이상으로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뤄진 집단이라는 게 밝혀졌고 이들이 지니고 있는, 지금까지 동물 고유의 유전자라고 알고 있었던 것들을 다 합치자 370여 가지나 됐다.

이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건 선천면역계의 구성요소인 톨유사수용체(TLR)다. 면역계야말로 다세포생물의 특징인데 깃편모충류의 일부가 이의 핵심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연구자들은 깃편모충류가 박테리아를 잡아먹을 때 TLR이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추정했다.

사실 깃편모충류 여러 종은 때에 따라 쉽게 군체(colony)를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이 유전자들이 관여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살핀고에카(Salpingoeca rosetta)라는 종은 먹이인 알고리파구스 박테리아와 함께 둘 경우 세포분열을 한 뒤에도 두 세포가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세포들이 분열해 최대 50개로 이뤄진 공 모양의 군체를 이룬다. 수정란이 발생과정에서 분열하는 것이 연상된다. 반면 개별 세포는 절대 하나로 뭉치지 않는다.

깃편모충류와 동물의 공동조상이 지금까지 동물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유전자들을 370여 개나 갖고 있었다는 건 어쩌면 이들이 단순한 형태의 다세포성(군체)을 지니고 있었음을 뜻할지도 모른다. 그 뒤 깃편모충류 계열로 진화하면서 일부는 이런 특성을 유지하고 일부는 잃어버려 평범한 단세포생물이 된 것 아닐까.

반면 동물 계열로 진화한 쪽은 단순한 세포 무리를 넘어 기능이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세포가 분화하는 전략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유전자의 대부분을 기존에 지니고 있는 유전자를 재활용해 용도를 변경하거나 유전자를 재조합해서 새로운 기능을 지닌 유전자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예일대의 자카리 루이스와 캐이시 던은 같은 호에 실린 해설에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에 대해서 뭔가를 알지 못하면 동물이 정말 얼마나 특별한지 알 수 없다”며 “이들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우리(동물)는 덜 특별한 존재인 것 같다”고 쓰고 있다.

깃편모충류의 한 종인 살핀고에카(Salpingoeca rosetta)가 먹이인 박테리아가 있는 환경에서 세포분열을 하며 군체를 이루는 과정을 찍은 사진이다. 오른쪽 아래 숫자는 경과 시간과 분을 뜻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깃편모충류와 동물의 공동조상은 이미 다세포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 이런 군체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암은 단세포성으로의 회귀

다음으로 흥미로운 내용은 암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암세포는 세포의 성장과 유지, 사멸(죽음)을 조절하는 정교한 시스템이 무너진 결과 제멋대로 행동하는 세포라는 게 기존 관점이다. 이에 따르면 이런 세포의 무리를 암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고장이 난 유전자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치료법도 달라야 한다. 암이 정복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100여 년 전 독일 생물학자 테오도어 보베리는 ‘악성종양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암이 고대의 표현형이 드러난 결과라고 관점을 제시했다. 즉 단세포생물에서 다세포생물이 나왔기 때문에 다세포생물의 세포에는 여전히 단세포성이라는 ‘고대의 표현형’이 잠복해 있는데 어떤 이유로 이게 드러나면 암이 된다는 것이다.

암은 다세포생물의 세포 안에 잠재돼 있는 단세포성이 드러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즉 진화의 역사에서 다세포성이 나타나면서 단세포 유전자가 다세포 유전자에 억눌려 개별 세포는 복잡한 구조의 벽돌 역할로 전락했는데, 어떤 계기로 단세포 유전자를 죄고 있던 고삐가 풀리면서 그 옛날 단세포 조상의 독립성이 되살아난 것이라는 말이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지난해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는 보베리의 가설을 100여 년 만에 명쾌하게 증명한 논문이 실렸다. 호주 멜버른대 연구자들은 먼저 사람의 유전자 1만7318개를 진화의 역사에 따라 16단계로 나눴다.

즉 지구에 생물이 나타난 이후 원핵생물만 살던 시절부터 있던 유전자가 1단계이고 진핵생물이 나오면서 생긴 유전자가 2단계, 후편모류(Opisthokonta. 균류, 깃편모충류, 동물류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는 이들의 공동조상을 의미한다)가 나오면서 생긴 유전자가 3단계, 동물이 나오면서 생긴 유전자가 4단계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마지막 16단계는 호모 사피엔스(현생인류)에 고유한 유전자다. 이 가운데 1~3단계를 ‘단세포 유전자’로 나머지 4~16단계를 ‘다세포 유전자’로 불렀다.

연구자들은 폐암 2종, 유방암, 전립선암, 간암, 대장암, 위암 등 일곱 가지 암세포 시료 3473개와 비교군인 정상 조직 시료 386개를 대상으로 유전자 발현 패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일곱 가지 암 모두에서 암세포가 정상세포에 비해 1~3단계, 즉 단세포 유전자의 발현량이 더 높았다. 반면 4~11단계, 즉 동물(다세포성)의 등장에서 수아강(유대류와 태반류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는 이들의 공동조상을 의미한다)까지 다세포 유전자는 발현량이 낮았다. 12~16단계, 즉 태반류의 등장에서 호모 사피엔스까지는 별 차이가 없었다.

정상세포에 비해 단세포성이 커진 게 암세포라는 걸 증명하는 실험 데이터다. 사람 유전자를 진화 역사에 따라 16단계로 분류한 뒤 각각의 유전자 발현패턴을 비교해보면 암세포에서 단세포 유전자(1~3단계)는 발현량이 는 반면 다세포 유전자는 줄거나(4~11) 변화가 없다(12~16). 깃편모충류와 동물의 공동조상인 후편모류(Opisthokonta)가 변곡점임을 주목하라.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그래프를 보면 3단계는 증가에서 감소로 가는 변곡점에 해당한다. 깃편모충류와 동물류의 공동조상으로 아직 단세포생물이면서도 다세포성에 필요한 유전자가 여럿 만들어졌다는(따라서 군체는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킹 교수팀의 연구결과와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7가지 암 모두에서 단세포 유전자의 발현이 늘고 다세포 유전자의 발현이 줄었다. 테오도어 보베리의 주장대로 단세포성이라는 ‘고대의 표현형’이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정상 인체 세포에서 단세포 유전자와 다세포 유전자는 각각 어떤 역할을 할까.

단세포 유전자는 세포 주기와 대사 과정에 주로 관여했다. 즉 세포가 분열하고 성장하는데 필요한 유전자라는 말이다. 반면 다세포 유전자는 조직 분화나 개체의 복잡성, 세포사멸에 관여했다. 결국 단세포성이 커진다는 건 세포 증식을 지향하고 사멸을 피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말이다. 바로 암세포의 특징이다.

한편 암세포에서 스트레스 반응과 관련한 유전자 발현의 경우 단세포 기원은 55%가 늘었고 다세포 기원은 69%가 줄었다. 즉 암세포에 스트레스를 주면 단세포성이 오히려 더 강화된다는 말이다. 화학요법에 내성이 나타나는 이유다.

한편 암세포에서는 단세포 유전자 사이의 네트워크 역시 강화돼 있었다. 반면 단세포 유전자와 다세포 유전자 사이의 네트워크는 크게 약해졌다. 즉 구세대 유전자와 신세대 유전자 사이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분석이 새로운 암 치료법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즉 단세포 유전자의 득세로 부적절하게 활성화된 경로를 다시 잠재우는 방법을 찾는다면 효과적으로 암을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다세포생물이란 공(公, 개체)을 위해 사(私, 개별 세포)는 언제라도 희생될 수 있는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다. 즉 세포사멸(apoptosis) 명령이 떨어지면 이유를 묻지 않고 자살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 개체로 100년 가까이 살 수 있는 것도 제 역할을 마치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 수많은 세포가 스스로 사라지는 운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단세포생물이 야생마라면 동물의 세포는 우리에 갇힌 말과 같다. 재갈에 물린 채 묵묵히 사람을 태우고 다니지만 몸에는 그 옛날 들판을 마음껏 뛰어다니던 조상의 피가 흐르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우리의 빗장이 풀려있는 걸 발견한 말이 탈출을 감행해 꿈을 이룬 게 암세포 아닐까. 그렇게 해서 소원은 풀었지만 제멋대로 돌아다니다 주변 기물을 부수고 지나가는 사람을 다치게 하듯이 암세포 역시 새 삶을 살며 자신이 속했던 사회(개체)에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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